남성미 넘치는 정통 SUV에
필수 요소였던 ‘캥거루 바’
왜 요즘엔 볼 수가 없을까?
SUV의 인기가 세단을 눌러버린 요즘은 쿠페형부터 해치백 느낌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SUV를 볼 수 있다. 실질적으로는 두 장르를 섞은 크로스오버(CUV)로 분류하는 게 적합하겠지만 많은 자동차 제조사들이 ‘도심형 SUV’로 내놓는 게 현실이다.
정통 SUV는 프레임 바디 기반의 듬직한 실루엣과 큼직한 타이어, 높은 지상고 등 우락부락한 디자인으로 가득하다. 이 중 과거 SUV의 상징적인 요소가 하나 있는데, 바로 ‘캥거루 바’다. 라디에이터 그릴 부분을 둥글게 덮는 쇠 파이프 형태의 보조 범퍼가 그것이다. 캥거루 바는 어떤 역할을 했으며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캥거루에겐 미안하지만
이름 그대로의 역할 맡아
캥거루 바의 유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말 그대로 캥거루에 대항하기 위해 호주에서 개발된 것이라는 가설이 유력하다. 세계에서 6번째로 넓은 국토를 가진 호주는 아직 국토의 상당 부분이 개척되지 않아 오지를 통과하는 고속도로에서 로드킬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캥거루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은데, 덩치가 작은 왈라비를 제외한 캥거루 성체는 몸무게가 100kg을 넘는 개체가 허다하다. 그만큼 캥거루와 로드킬 사고가 발생할 경우 차량으로 가해지는 충격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특히 차량을 향해 달려오는 캥거루와 충돌한다면 그 충격량은 4톤을 넘기기도 한다.
한때 국산 SUV도 유행
현대 갤로퍼가 대표적
따라서 캥거루를 치게 되면 탑승자도 위험해지지만 차량 역시 운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허허벌판에서 한국처럼 보험사 견인차를 부를 수도 없고 통행량이 적어 도움을 청할 방법도 마땅치 않으니 결국 차량 손상을 최소화할 방법을 연구하게 됐고 그 결과물이 캥거루 범퍼였던 것이다.
이후 국산 SUV 중에서는 현대정공 갤로퍼에 캥거루 바가 최초로 적용되었고 당대 SUV의 디자인 요소로 유행해 쌍용(현 KG모빌리티) 코란도 훼미리, 무쏘, 현대정공 싼타모 등에도 적용되었다. 하지만 기능적으로 캥거루 바의 역할을 해내는 디자인은 거의 없었으며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경우도 적지 않았다.
보행자 안전이 우선
자연스레 도태됐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국내에서도 보행자 보호에 최적화된 차량 디자인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캥거루처럼 큰 야생동물이 거의 없는 한국에서 캥거루 바는 무용지물일 뿐만 아니라 보행자와 사고가 발생할 경우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만큼 그 인식은 점점 나빠져 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우락부락한 디자인 대신 매끈한 디자인의 도심형 SUV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며 캥거루 바는 빠르게 사라져버렸다. 현재도 호주에서는 캥거루 바를 장착한 차를 쉽게 볼 수 있으나 한국, 유럽 등지에서는 더 이상 캥거루 바를 순정 부품으로 달고 나오는 차량이 없는 듯하다.